연평교회, 포격 100일 만의 첫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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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혜경씨(오른쪽)와 기념촬영 하는 교인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길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이시니라’(잠언 16:9)
그 섬에 가는 길이 그랬다. 인천 앞바다는 석 달이 넘도록 연평교회로 가는 뱃길을 내주지 않았다.
평일엔 잠잠하다가도 주말이면 파도의 본성을 드러냈다. 하루 전날 밤만 해도 무사히 출항할 것이라던 예보는 당일 오전 9시면 여지없이 빗나갔다. 가방을 쌌다가 풀었다 4번의 우여곡절 끝에 ‘눈물의 연평도’ 땅을 밟았다.
지난 6일 70여명의 교인은 포격 후 100일 만에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감격의 예배를 드렸다.
꽁꽁 얼어붙었던 사람들의 마음 밭에 사랑과 평화의 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연평도에도 봄이 오고 있었다
예배당은 1936년에 창립됐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 인천노회 소속이다. 예배당 오른쪽 모퉁이 돌엔 ‘1976년 9월 5일’에 완공했다고 적혀 있다.
해병대 군인교회 빼곤 연평도에서 하나밖에 없는 교회다. 
대전 한남대학교 출신으로 대전신학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송 목사는 2010년 봄 연평교회에 부임했다.
연평도가 포격을 맞은 11월 23일은 그가 영원토록 잊지 못할 날이 됐다. 당회가 인정하는 담임목사 위임예배가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하루 전 22일 오후 7시에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해상 날씨가 좋지 않아 하루 연기된 것이다. 송 목사는 그날의 악몽을 떠올렸다.
“안 됩니다. 목사님, 오늘 위임식은 취소입니다. 돌아가셔야겠습니다. 빨리 다시 승선하십시오.”
천만다행이었다. 인천노회 소속 목회자들이 탄 배가 4∼5분 정도 늦게 도착한 게 말이다. 만약에 제 시간이나 좀 더 일찍 도착했더라면 큰일 날 뻔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담임목사 위임감사예배 날 날벼락
연평도는 알려진 것처럼 한국전쟁 때도 포격을 한 번도 받지 않은 평화의 섬이었다. 그래서 이날도 날벼락 같은 공격을 받고서도 주민들은 설마 했다고 했다.
송 목사도 처음에는 ‘군이 왜 훈련을 저렇게 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배를 다시 인천으로 돌려보내고 부랴부랴 교회로 돌아오니 KT송신탑 바로 옆 교회 식당과 창고 옆에 큰 구덩이가 뚫린 것이었다.
예배당은 파편을 맞아 벌집처럼 변했다.
유리창은 모두 깨지고 커튼도 갈기갈기 찢어졌다. 고장이 자주 나던 온열기 2대도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집 근처에 시선이 멈췄어요. 모두들 발만 동동 굴렀지요. 교회로 와 보니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더군요.
사택 주변 4가구에 포탄이 떨어졌어요. 방사로켓이라 다행히 위력이 크지 않았던 것이 정말 불행 중 다행이지요.”
상당수 가족들이 그날 밤에 어선을 타고 인천으로 떠난 상태였다.
송 목사와 정창권(57) 장로 가족 등 섬에 남은 사람들은 그날, 어두컴컴한 방공호에서 기도하며 밤을 지새웠다.
정 장로 집 안방엔 아직도 그날 지붕을 뚫고 집안을 화마에 휩싸이게 한 탄피가 남아 있다.

본당서 첫 예배 눈물의 기도
오전 11시가 다가오자 성경책을 가슴에 품은 성도들이 교회길 오르막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올라왔다.
40∼50년이 넘어 보이는 측백나무도 오랜만에 성도들의 얼굴을 반갑게 맞으며 머릿결을 살랑살랑 흔들어 보였다.
올해 88세 정진섭 은퇴 장로는 측백나무를 바라보며 감회어린 마음으로 예배당 길을 올랐다. 그는 이곳에서 태어나 연평우체국장을 지냈다.
현재는 아들 창권(57) 장로가 대를 이어 우체국장이 됐다. 도서지방은 별정직이라 대물림이 가능하다.
정 은퇴 장로는 “그동안 본당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어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는데 오늘 밤부터는 두 다리를 쭉 뻗고 잠들 수 있게 됐다”고 기뻐했다.
예배는 11시 정각에 시작됐다. 다같이 일어나 찬송가 1장(‘만복의 근원 하나님’)을 부를 땐 숙연했다. 코끝이 찡했다. 본당에서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지 못한 지 3개월이 넘었지만 교인의 목소리와 태도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사도신경과 성시교독 72번(이사야 58장)을 다같이 낭독할 때도 누가 먼저 앞서거나 뒤처지는 이가 없었다.
찬송가 29장(‘성도여 다 함께’)을 부를 땐 눈앞이 자꾸 흐려지는지 너 나 할 것 없이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곤 했다.
“….”
이날 대표기도를 하기 위해 연단에 오른 정 장로는 목이 메어 몇 마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먼저 생각지도 못한 북한의 포격으로 100일 전에 교인이 교회를 떠났던 일을 회개했다.
정 장로는 “성도들이 육지로 피난을 떠난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음을 기억한다”면서 “이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본당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을 감사드린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면서 눈물을 쏟았다.
그는 또 “무자비한 포격으로 성도들이 많은 것을 잃어버렸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는 세상의 그 모든 부귀영화도 소용이 없다는 교훈을 새삼 깨달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어 “연평교회를 지켜 주신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에 감사를 드린다”면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고마운 손길에도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고 전했다.
송 목사는 이날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대하 20:20∼24)를 주제로 말씀을 전했다. 그는 ‘너희는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고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러면 만사에 형통하게 된다’는 말씀을 전했다.
그러나 그는 성경이 말하는 형통은 고난과 역경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요셉이 애급으로 노예로 팔려 왔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성경은 요셉이 형통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했다.
요셉은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을 때도 원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기도했다고 했다.
이 모습을 성경은 형통하다고 기술했다고 역설했다. 송 목사는 이럴 때일수록 깨어서 기도하는 것을 멈추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또 “이 세상이 아무리 흔들려도 사랑하는 선지자들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말라”며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면 세상의 모든 환란과 역경, 고난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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