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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낙산로 숭인교회 유병수(67) 목사는 지난 13일 교회에서 열린 ‘유병수 목사 원로추대 및 김요한 목사 위임식’ 도중 최진영(53) 장로로부터 성경필사본을 전달받았다.

최 장로가 “감사드린다”는 말과 함께 두툼한 성경을 전달하자, 노(老) 목회자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 

40여년 목회를 한 유 목사의 표정에서 뭉클한 감동과 기쁨이 느껴졌다. 

잠시 후 목소리를 가다듬은 유 목사는 “우리 성도들이 이렇게 손수 성경을 써서 주시니 행복하다”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홍복(洪福·매우 큰 복)이다. 

비록 은퇴하지만 ‘노병은 죽지 않는다’는 말처럼 못 다한 선교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검은색 겉표지에 ‘필사본 가보성경’이란 금색글자를 새긴 이 성경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귀한 성경이었다. 

성도 143명이 한 자 한 자 직접 정성스레 썼기 때문이다. 

숭인교회 성도들은 교회가 매년 실시하고 있는 ‘성경일독 캠페인’에 참여해 왔다. 

유 목사는 교회에 다니면서도 삶 가운데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성도가 많음을 안타까워해 ‘성경 읽는 생활’을 강조했다. 

또 ‘열심히 말씀을 보는 신자가 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제목을 목회지침으로 삼고 캠페인도 실시했다. 

성도들은 지난해 성경읽기를 넘어 성경쓰기에 도전했다. 

연초부터 필사해온 성경책이 완성될 쯤 후임 김요한(38) 목사는 은퇴하는 유 목사에게 이 원고를 묶어서 만든 성경을 선물하자고 제안했다. 

성도들은 기쁜 마음으로 제안에 응했다. 이 성경은 성경쓰기운동본부(본부장 황연호 목사)가 주최한 ‘2014년 성경쓰기 공모전’에도 출품돼 눈길을 끌었다. 

성도들은 신구약 성경 1752쪽 분량을 평균 12쪽씩 범위를 정해 나눠 썼다. 

10대 어린이부터 80대 할머니 권사님까지 성경쓰기 캠페인에 참여했다. 

또박또박 정자체로 쓴 성도가 있는가 하면, 한글을 잘 읽지 못하거나 펜을 쥘 힘이 없어 한 문장을 쓰는 데 한 시간 이상 걸린 성도도 있었다. 

직장인들은 퇴근 후 밤늦도록 말씀을 읽고 쓰고 음미하다 성경필사의 재미에 푹 빠지기도 했다. 

유다서를 썼다는 교회 봉사부장 심남숙(57) 권사는 “맡은 부분을 다 쓰고 나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가르쳐 주신 원로목사님이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렸다. 문용성(48) 장로는 “성경을 쓰면서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아야 한다는 원로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났다”면서 “십자가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으신 예수님처럼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유 목사는 이날 답사에서 “성도들 덕분에 기쁘고 즐겁게 목회생활을 했다”면서 “앞으로도 변함없이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후임목사의 일에는 절대 관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이라며 “후임목사가 나와 다르게 목회한다고 비교하지 말라. 나와 다르게 목회를 해야 교회가 성장할 수 있다. 

후임목사에게 부담을 주지 말고 소신껏 목회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당부했다. 

유 목사는 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 감사부장, 예장출판사 감사, 중국 S신학교 이사장 등을 맡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를 더 젊게 만들어 성장시키고 싶은 소망을 갖고 교단이 정한 정년보다 앞서 조기은퇴하기로 결심했다. 

이를 위해 10년 전 교육전도사로 부임해 4년간 시무한 김요한 목사의 유학비용을 지원하고 2010년 후임 청빙을 결의했다. 

원만한 승계를 위해 2013년부터 2년 동안은 ‘동사목사(같은 권리를 가진 두 명의 목사가 한 교회를 목회하는 경우의 목사)’를 자청했다. 

이번 성탄절 헌금도 쪽방주민 등을 위한 구제금으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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