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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원로>




Q: 700여 명 모이는 교회의 안수집사입니다.
설교와 광고시간에 헌금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거부반응이 일어납니다.


A: 헌금 이야기가 잦은 것은 재정 충당의 필요성이 있거나 교인을 훈련하려는 의도일 것입니다.
하지만 좋은 말도 자주 하면 잔소리가 됩니다.


왜 헌금을 해야 할까요. 성경이 말하는 헌금은 기부금도 잡부금도 아닙니다.
이스라엘에선 하나님께 드리는 신성한 의무였습니다.
용도는 다양했습니다.


이웃섬김 등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하나님 은혜로 민족이 구원받아 신앙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은혜에 대한 감사로 헌금을 했습니다.


헌금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집행됐습니다.
바울이 밝힌 헌금 원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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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말씀을 보면, 섬기는 일에 사용했고(9:1) 미리 준비했으며(9:2,5) 억지로 하지 않았고(9:7) 너그럽게 넉넉하게(9:11) 했습니다.

헌금을 국민의 의무인 납세에 비깁니다만 단순 납세가 아닙니다.
누구도 부과된 세금을 즐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헌금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미리 준비하고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않고 즐겨 드려야 합니다.


교회는 헌금의 원리를 바르게 가르치고 헌금을 투명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교회 재정이 여유 있다고 해서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로 돌려선 안 됩니다.
모자라는 것도 문제가 되지만 남아도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왜 교회헌금이 남아돕니까.


교회의 재정축적을 위해 헌금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누고 섬기고 베풀어야 할 일이 널려있는데 돈이 남아돈다면 교회의 사명 관리에 구멍이 뚫렸다고 봐야 합니다.


헌금을 강요당한다는 생각이 들면 헌금을 하지 마십시오.
강요당한 헌금은 헌금이 아닙니다.


받은 은혜에 대한 결단이라면 넉넉하게 하십시오.


아브라함은 십일조를 드렸고(창 14:17~20)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쳤습니다.(창 22)
강요나 압박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그리고 받은 것이 더 컸습니다.(창 22: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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