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1972
번역 및 해설: 조은석 목사 (금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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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나는
하늘의 밝은 빛을 찾아 구했습니다. 
그러나 내 눈에 겨우 보이는 것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캄캄한 산맥뿐입니다.
뛰어 나가 참된 위로를 얻고 싶지만
내 몸은
바닥에 들러붙은 그 무엇처럼 “일어나라!”는 내 명령을 거역합니다.

오, 하나님
왜 내 두 눈은 기도 대신에 눈물만 흘리고 있습니까?
왜 내 영혼은 걱정과 냉기 속에 떨고만 있습니까?
내 영혼은 두 손에 알 수 없는 장미덤불을 끌어안고
두 손으로 움켜쥔 내 심장은 죽음의 이름으로 나를 떠나고 있습니다.

그 가시를 주워듭니다.
저들이 예수님을 못 박았던 가시를.
예수님의 그 거룩한 이마에서 그들은 거룩한 피를 뽑아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네 모든 죄인들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사랑의 장미 한 송이씩 심어주셨습니다.

나는 내 영혼이 아이리스처럼 희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두 손이
순교의 종려나무 가지를 붙들게 되면 좋겠습니다.
내 병든 몸이 죽음의 냉기를 느껴야 할 때마다
오, 주님
내게 그 아름다운 빛을 내려 주소서.
당신의 그 빛난 얼굴 뵐 수 있도록.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25-26

사람은 누구나 두려움이 있다. 두려움의 본질은 죽음이다. 날마다 무너지는 육체를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첼리타는 두려움이 숙명이었다. 이럴 경우 대개는 체념이다. 음지식물이 햇빛을 피해 도리어 어둠을 사랑하듯, 평안을 어색한 상대로 여기고 두려움과 친숙해진다. 공포 없는 삶을 도리어 두려워한다. 이럴 때 말씀의 빛이 비친다. 말씀의 빛은 어둠을 몰아낸다. 우리가 감추려고 했던 스스로의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는 그저 죄인이다. 드러남은 절망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여기서 소망이 시작된다. 도망치는 어둠이 아니라 어둠을 뚫고 일어서는 빛을 사모한다. 장미는 썩은 흙을 먹고 맑은 향을 토한다. 하늘을 바라볼 때, 빛을 사모할 때 비로소 꽃을 피워내고 향기를 토해내는 생명의 법칙이다. 왜 두려워 하느냐?
믿음이 없는 자들아! 주님의 음성을 가슴으로 듣는다.

시집구입 (415)425-9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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