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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전 대통령의 외동 딸 첼시양의 결혼식이 지난주 화제를 뿌렸다.
우선 미국 판 로얄 웨딩이라느니 오마바 대통령도 초청을 받지 못했다느니 시어머니는 유명 방송 앵커에다 대학교수로 있지만 시아버지는 감방에 다녀온 전과자라느니 대개 그런 얘기들이다.
시누이 한 사람은 어릴 적 한국에서 입양된 사람이라고 한다.
또 결혼식에 관련된 업체들과 비용 여부를 완전 비밀에 부치기로 철통같은 계약을 맺어 이 화려한 결혼식 비용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산출불가인 모양이다.
그런데 요건 좀 이상하다.
첼시는 감리교인이고 남편은 유대교인이라는 것이다.
고리타분한 유대교 정통파인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종교는 다르다.
기독교가 유대교 뿌리에서 나왔으니 뭐 사돈의 팔촌지간으로 따진다면 대충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남편이 안식일을 지키러 토요일에 회당으로 사라지면 부인 첼시는 어쩐다?
주일에 예배당에 나가는 아내를 두고 남편은 ESPN이나 시청하고 있을까?
남의 집 사생활에 별 허무한 공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것 같아 좀 미안하다.
좌우지간 화제를 뿌린 만큼 아름다운 가정 이루어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하기야 친정 부모가 서로 종교가 달랐으니 이해도 간다.
아니 교단이 달랐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뱁티스트, 힐러리 장관은 오랜 감리교인이다.
주일이면 가는 예배당이 달랐다.
사실 같은 개신교회로서 교파가 다르다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우리네 한인 가정에서도 부모님이  장로교 나가면 자식 부부는 감리교나 성결교 나가는 가정들도 꽤 있지 않은가?
힐러리 클린턴 부부를 보면 부부라 할지라도 서로의 종교를 배려하고 내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 멋쟁이로 보여 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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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2008년 기준 미국인 부부 31%는 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같은 현실을 조금 더 비화시키다보면 사실 멋쟁이가 아니라 고민스러운 현실이 될 수 도 있다.
예컨대 아내가 불교신자가 되겠다고 나온다던지 몰몬이나 사이언톨리지에 가입하겠다고 나오면 어찌해야 하는가?
또 다 큰 자식들이 이슬람에 매료되어 무슬림이 되겠다고 코란을 들고 나서면 그때는 어찌할 것인가?
여기서 크는 아이들이 부모의 신앙을 고분고분 받아 챙기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건 부모들이 차에 태워 주일학교 데리고 갈 때의 추억이지 자기들이 운전하고 다니면서 대학 간다고 집으로부터 멀리 해방되면 이것들이 무슬림이 되고 있는지 부디스트가 되고 있는지 알아먹을 도리가 없다.
매일 자식들 위해 새벽 기도만 한다고 고삐 풀린 그들이 기독교 신앙에서 평생토록 안식을 누릴 것이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아주 신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게이, 레즈비언이 탄생하고 불교, 이슬람, 심지어 컬트에 빠져드는 아이들도 있다.
그래서 주일학교, 특히 교회의 유스 미니스트리가 중요하다.
우선 일차적인 책임은 부모들에게도 있다.
겉으로는 예수, 예수를 외쳐도 거울처럼 모든 것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가정생활에서 입버릇처럼 교회를 비판하고 담임목사를 딥따 욕해대면 그 가정의 아이들이 부모들의 기독교 신앙을 ‘영원토록’ 이어받아 살아가겠는가? 
이번 주 LA 한국일보는 남가주 요바린다에 사는 24세의 한인 여성이 부모와의 종교 갈등 때문에 호텔 객실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고 보도했다.
충격적인 뉴스다.
우리 이민사회에서 부모와 자식 간에 종교 문제로 자살사건이 발생한 것은 아마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부모가 어떤 종교를 강요했는지는 몰라도 당연히 부모와 종교가 달랐을 것이다.
이제는 교회들이 이 문제를 주목해야 한다.
우리의 고민거리는 종교가 다른 부부, 며느리와 사위, 그리고 기독교 신앙을 포기 하겠다는 자녀들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억울하고 분하지만 이제는 인터페이스 패밀리(Interfaith Family)시대, 그러니까 ‘종교 초월 가정’의 등장을 예비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인 개신교 신자 가운데 20%가 다른 종교 신자와 결혼하는 것으로 퓨 리서치의 조사결과 나타났다. 
그러므로 가족 구성원 끼리 신앙은 달라도 서로 강요하지 않고 상호 존중해 주며 상처를 주지 않는 기본적인 매너를 우리는 훈련해야 한다.
이는 종교다원주의를 신봉하자는 주장도 아니요 우리의 신앙심을 변질시키자는 말도 아니다. 
철저하게 자유로운 종교선택의 풍토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이 부모들의 신앙을 계승해 주는 것은 축복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가족끼리 종교가 달라지는 경우가 도래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가족끼리 원수가 되어 원망하고 저주하고 울고 불고 뒤엉키는 콩가루 집안이 된다면 결코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이 아니다.
이제 우리도 인터페이스 패밀리 시대에 길들여 질 때가 된 것이다.     

크리스천뉴스위크
발행인 조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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