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JPG




한국 운동권 정권의 부패와 탐욕, 부도덕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정치인들이 청와대 앞에서 연거푸 삭발식을 갖고 민주주의가 타살됐다고 항변하는 모양이다.


대학생 때부터 권력의 꿀맛을 연상하며 빨간 띠를 두르고 거리를 휩쓸던 ‘민주투사’들이 정작 권력의 칼자루를 틀어쥐고 그 꿀맛에 도취되어 있으니 일부 정치인들의 릴레이 삭발이 자유 대한민국의 약발로 통할 리가 있을까?


불교에서는 머리카락을 번뇌의 상징으로 본다. 그래서 세속의 인연과 번뇌를 잘라낸다는 뜻으로 삭발을 하는데 본래는 싯다르타가 출가를 결심한 뒤 치렁치렁한 머리가 사문생활에 들어가려는 나에게 적합하지 않다며 허리에 찬 보검을 뽑아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른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정통파 유대인들은 머리도 기르고 수염까지 기른다.


확 붙잡아 바리깡으로 밀어주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있지만 그들의 장발과 수염은 사실 하나님에 대한 서원에서 비롯된 거룩한 결단인 것이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나실인은 자신의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치기로 서원한 사람들을 말한다. 이 나실인이 지켜야 할 엄격한 3가지 준수 사항가운데 첫째가 머리에 삭도를 대면 안된다는 것이다. 율 브리너처럼 머리를 밀면 안된다.


둘째, 포도나무의 소산은 입에 대지도 말라는 것, 셋째는 시체를 만지거나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시체는 죽음이고 죽음은 죄의 결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실인들 중에는 태생적인 나실인, 그러니까 어머니의 DNA를 통해 나실인이 된 사람들이 있는데 예컨대 삼손이나 사무엘, 세례 요한, 그리고 예수님도 나실인이었다고 한다.


한편 자원하여 나실인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 대표주자가 사도 바울.


예수님도 그림으로 보면 장발이셨다. 갈릴리 바다에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시며 나타나셔서 베드로와 안드레를 제자로 부르셨다. 그래서 분명 나실인이셨는가?


그럼 공생애중에 죽은지 사흘이 지난 나사로의 시체를 보고 살려주셨으니 시체를 가까이 말라는 나실인의 규칙을 위반하신게 아닌가?


그뿐이 아니다. 최후의 만찬에서는 나실인들이 엄격하게 금했던 포도주를 드시며 제자들과 작별의 시간을 가지셨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긴 장발은 반드시 나실인이었기 때문이었다는 주장은 시커먼 거짓말이 되는 것이다.


자원하여 나실인이 되었다는 바울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긴 머리를 밀고 삭발식을 가졌다.
난 이제 더 이상 하나님께 바쳐진 인생을 살지 않겠다는 반역의 퍼포먼스였는가?


사실은 그 정반대였다.


더 이상 유대교의 율법아래 있는 나실인이고 어쩌고 그래서 삭발을 하지 않고 시체를 멀리하고 그런 거 지키는 것이 의미가 없다, 난 이제 율법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에게만 속한 사람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유함을 누리기 위한 믿음의 결단식이었다.


바울의 그 역사적인 삭발식이 결행된 곳이 바로 지금의 그리스, 옛 성서의 지명으로 말하면 고린도의 겐그리아 항구다. 그 항구에 가보면 훵~하니 아무것도 없다. 지진으로 일부가 바다에 내려앉기도 하고 항구의 흔적은 사라지고 그냥 작은 해수욕장에 불과한 겐그리아.


그는 고린도에서의 2년여 개척교회 목회를 뒤로 하고 에베소로 떠나면서 삭발식을 가졌다.


거기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와 함께 천막장사를 하면서 자비량 선교사로 일했다. 그리고 뵈뵈란 위대한 평신도 지도자도 키워냈다. 뵈뵈는 나중에 바울의 ‘로마에 보내는 편지(로마서)’를 들고 로마에 간 여성 평신도 지도자였다.


음란의 항구 도시로 알려졌던 고린도 목회를 뒤로 하고 자신의 선교 거점이었던 시리아 안디옥으로 귀향하면서 바울은 믿음의 중간 점검 차원에서 삭발식을 거행했을 것이다.


여러 시련과 박해에 굴복하지 않고 꿋꿋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내가 로마를 보아야 하리라’란 그의 거룩한 소원을 포기하지 않기 위하여, 자신의 마음을 다잡기 위한 결단으로 삭발을 감행했을 것이다.


로마에 가면 바울이 참수당한 터 위에 세워진 바울 참수기념교회당이 있다.
거기서 목이 잘려 인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누구와도 타협을 거부하고 오직 복음을 들고 로마에 까지 진군했던 격정의 복음전도자 바울의 삭발식이 벌어진 겐그리아에서 나는 그때의 삭발현장을 상상해 보곤 한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터키-그리스 성지순례 중에 난 또 다시 그 겐그리아 항구를 방문하고 바울의 삭발식, 그리고 뵈뵈를 상상해 볼 것이다.  


요즘 정치적인 삭발현장엔 TV카메라를 들이대곤 하지만 그때 바울의 삭발식엔 누가 동참했을까?
아마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정도?


고독하고 쓸쓸했지만 그의 삭발로 더욱 굳어진 복음에 대한 열정 때문에 천하를 호령하던 로마 제국은 결국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았던가?


세상엔 여러 모양의 삭발식이 있지만 “내가 그리스도안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란 고백답게 오직 주님과의 관계를 훼방하는 모든 인연을 끊어내기 위해 스스로 자행하는 믿음의 삭발식. . . 그게 우리에게도 필요한 게 아닌가?


면도칼로 머리칼을 박박 밀어내는 삭발이 아니라 마음에 크고 있는 탐욕과 부조리, 거짓과 유혹을 거침없이 밀어내는 영적인 삭발식 . . .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기획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