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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수 목사
<아틀란타 연합장로교회>



얼마 전에는 7년이나 같이 동역하던 부목사를 내쉬빌 지역에 담임 목사로 출가 (?) 시켰다. 


부목사들을 담임 목회 임지로 내어 보낼 때마다 마치 시집을 보내는 그런 감격이 내게 있다. 


온 교우들이 합심하여 축복하며 목사님의 가정을 아쉬움 가운데 보내 드렸다. 


교우들도 석별의 정보다는 새로운 임지로 떠나 보낸다는 감격이 더 컸던 것 같다. 


지난 날 나 자신의 목회 여정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아주 젊은 나이에 개척 교회를 하고자 캘리포니아 북쪽으로 떠나던 날이 있었다. 

얼마나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떠났는지 모른다.


그 때는 아무 것도 없던 허허로운 그런 개척 교회를 떠나면서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나 지금 떠나는 부목사는 여러 가지 호조건에서 담임 목회자로 출발한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아울러 내가 후배 목회자를 담임 목사로 보내는 위치가 되었으니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 


지난 7년 동안 내게 야단도 많이 맞고 호된 훈련도 많이 시킨 목회자였다. 


그런 이유는 단 한가지다. 좋은 목회자가 되라는 계도의 채찍질이었다.


이민 교회에서 부목사들이 을처럼 취급을 당한다는 기사를 읽고 가슴이 아펐다. 


담임 목사와 부목사의 관계가 주종 관계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나의 지론 때문이다. 

부목사는 미래 한인 교계를 이끌어 나갈 꿈나무다. 


이런 차세대 리더들을 때때로 단호하게 그리고 철저히 훈련시켜 그들로 미래의 주역이 되게 할 거룩한 의무가 현 담임 목사들에게는 있다. 


바울은 그 바쁜 선교와 목회 사역 가운데 그는 끊임없이 리더 재목을 찾아 훈련시켰다. 


그 중에서는 이미 상당한 리더십을 갖춘 실라도 있었다. 


‘ 믿음 안에서 참 아들’ 이라고 불렀던 디모데처럼 직접 키운 리더들도 있다. 


바울은 그들을 직접 사역지와 선교 현장을 다니면서 가르쳤고 때가 되면 책임과 권위를 위임하여 사역지로 파송시켰다. 


그가 키워 낸 차세대 리더들의 명단은 거듭된다. “ 디도, 누가, 아볼라, 실라, 브리스길라, 아굴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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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가는 곳마다 회당에서 학교에서 청중을 모아 가르쳤다. 


그러면서 될 성한 미래의 재목들을 눈여겨 보고 그들을 집중으로 멘토링과 코칭을 하였다. 


그러기에 초대 교회 기독교 부흥의 엄청난 단초는 그의 사람을 키우는 리더십으로 연원된다. 


내가 현재 섬기는 교회 부임한지도 만 이십 년이 된다. 


나도 이제는 마음을 비우고 마지막 호흡을 다스려야 할 때이다. 


나의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해 미래의 일꾼들을 양성해 보고 싶다. 


그리고 그 차세대들이 한국 교회와 이민 교회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면 그것이 나의 남은 비전이 될 것이다. 


미국 뿐만 아니라 선교지를 다니면서도 차세대 리더들을 세워 나가는 사역을 위해 남은 시간동안 최선을 다하기를 원한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교회를 개척하고 그 일으킨 교회들이 소아시아 전체와 유럽의 상당 부분까지 퍼져 나갔다. 


그는 그 교회를 통해 후임 리더십을 양성하고 그 교회를 그들에게 남기고 떠났다. 


그 후에도 틈틈이 그들을 찾아가 격려하며 동역하며 계도하였다. 


때때로 편지를 통해서도 리더십의 바통을 이어 나갔다. 


오늘도 그가 쓴 목회 서신서를 통해 나 같은 사람에게도 그의 리더십이 전해져 마음을 새롭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우리는 왜 그토록 고생을 해 가면서 미래의 리더들을 키워 나가야 하는가? 


왜 바울이 그 초대 교회에 이루었던 그 사역을 계속해야만 하는가? 


그것만이 교회가 살 길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키우는 그런 것이 이 시대 교회의 희망이다. 


현재의 상황이 아무리 암울하고 절망스럽다 할지라도 미래의 희망은 역시 사람에게 있다. 


사람을 키우는 교회, 차세대를 양육하는 공동체, 그곳에 바로 공동체의 맥이 이어지는 희망의 계주가 계속된다!   


<아틀란타연합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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