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승쾌-01.gif

임승쾌 장로

 

지난 9월25일 칼람에는 신성종 목사님이 지은 “내가 본 지옥과 천국”에 대해 조금 언급한바 있습니다.
그 중 천국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생겼는데 열두 계단으로 되어있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첫 번째 맨 앞줄에는 순교자들이 머무는 곳이었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예상외로 전도를 많이 한 성도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주님을 위해 일하다가 고난과 핍박을 감당한자보다도,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주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한 사람들보다도 , 또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목회자나 성도들을 위로한 사람들보다도, 평생을 교회 일에 봉사해온 사람과, 성경을 연구하며 신학교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쳤던 교수들보다도, 전도를 많이 한 성도들이 훨씬 하나님 중심에 가까이 있더라는 얘기였습니다.
오늘 저는 전도예화 한편을 읽다가 신목사님이 보신 천국 생각이 떠올라 이 글을 퍼왔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할 때였습니다. 경남 김해군 진례면 초전이라고 하는 동리에 초전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아주 작은 농촌 교회로 교역자를 모실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김용규 장로님 내외분이 늙은 몸을 이끌고 빈 교회에 와서 강단을 지키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장로님의 부인인 이충갑 권사님께서 그 교회에서 2km 떨어진 신월 마을에 전도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이충갑 권사님은 이순이 씨 집에 와서 사람들을 불러모아 놓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영생복락 면류관 우리가 받겠네….” 그분의 전도가 끝나자 이순이 씨가 물었습니다.
“영생복락 면류관이 무엇입니까? 참 그 말이 듣기 좋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다음 주일에 교회에 오십시오.”
“교회에 가면 그 영생복락 면류관을 줍니까?”
“주고 말고요….”
이순이 씨는 영생복락 면류관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준비하며 손꼽아 주일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교회에 갔습니다. 그때 그분의 나이 쉰 살이었는데 생전 처음으로 교회에 나갔습니다. 이순이 씨가 처음 출석한 교회에 그날 모인 교인은 10여 명이었습니다. 물론 그날 자기에게 영생복락 면류관을 약속하신 할머니가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이제 기다리던 영생복락 면류관을 받을 차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밤에 다시 오라고 하였습니다. 밤에 가면 영생복락 면류관을 줄 것 같아 또 나갔습니다. 그런데 역시 영생복락 면류관은 주지 않고 다음 수요일에 또 오라고 하였습니다. 또 다음 주일, 주일 밤, 수요일에 오라는 말이 반복되었습니다. 이순이 씨는 낙심하지 않고 영생복락 면류관을 받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또 오세요” 하는 말에 실망하지 않고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설교를 통하여 진정한 영생복락 면류관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죽어도 다시 살아서 영생한다는 구원의 진리가 영생복락 면류관인 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 후 그분의 삶은 180도로 변했고, 최 씨 종가의 그 많은 제사와 결별하였습니다.
물론 죽음에 이르는 핍박과 멸시를 받았으나 백절불굴의 신앙으로 승리하였습니다.
그분이 교회로 나온 후, 예배당이 그의 삶의 처소가 되어 버렸습니다. 찬송을 따라 부르면서 눈으로 글을 익혀 깨닫게 되었습니다. 임종 시간까지 그분은 요한복음,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야고보서, 요한계시록을 다 암송하였다고 합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애쓰신 이충갑 권사님의 지혜가 참으로 돋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던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 그 모두가 그의 삶이 되고 또 이를 위해 애쓰신 분은 당연히 하나님 곁의 두 번째 줄에 계셔야 될거라고 믿어봅니다. 할렐루야!
<본보 발행인>

발행인컬럼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