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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쾌 장로

 

 

얼마전 미국의 한 대형교회 목사님이 자신이 부임하게 될 교회 근처에서 노숙인 생활을 하며 구걸(?)행위를 해보았지만 그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은 세명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페이스북과 인터넷 판을 달구었습니다.


저도 이글을 읽으면서 과연 사실일까 라는 의구심을 가져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실명이 거론되고 댓글들이 소개되면서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기 시작했습니다. (본보 8월 4일자 Page B2, 노컷뉴스면 참조).


예레미아 스티팩이라는 목사님 실명과 사진도 실린것을 보면서 전혀 없는 얘기를 꾸며낸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1만명의 교인수를 가진 미국의 한 대형교회.


그 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될 예레미아 스티팩 목사님.


그는 과연 어떤생각을 가지고 그 교회 근처에서 노숙인으로 변신해 봤을까요?


우선 교인들은 구걸행위를 하는 그에게 관심이 없었고, 그가 예배당에 들어가서도 예배위원들의 차가운 시선과 함께 예배당 뒷자리로 밀려났다했습니다.


그에게 그런 대우(?)를 했던 교인들이 그가 정작 자신들의 담임 목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때 그 교인들의 표정을 한번 짐작해 봅시다.


제가 그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요?
독자 여러분들은 또 어땠겠습니까?


경악, 부끄러움, 회개...
뭐 그런 감정들이 뒤범벅이었겠죠.


"내가 주릴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더구나 그 스티팩 목사님이 강단에 올라와 마태복음 25장 42절을 이렇게 읽어 내려 갔을때 예배당안의 교인들의 표정은 어땠을까요?


우리들이 거주하고 있는 이 베이지역에도 곳곳에서 노숙인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신호대기로 자동차 행렬이 길게 늘어지는 곳에는 거의 틀림없이 노숙인들이 갖가지 팻말을 들고 자동차 운전자와 눈을 맞추려하는 표정들을 보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애써 외면했던 모습들은 아니었나요?


젊은데 일자리를 찾아보지...상습적인 사람들이 많다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며 돕지않은 구실을 정당화 시켜볼려는 생각은 없었나요?


스티팩 목사님이 그날 자신의 교인들을 향해 마지막 한마디를 더 남겼다는 말을 떠올려 봅니다.
"세상에는 교인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제자는 부족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당신들이 믿는 것 이상입니다.
그것은 이웃과 함께 그리고 옆에서 사는 것 입니다"


이웃과 함께 옆에서 사는 것이라는 그 한마디...


우리들은 "교회안에 있을때만 교인"은 아니었던 가요?


<본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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