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승쾌-01.jpg

임승쾌 장로



"저는 무엇보다 여러분의 기도를 받고 싶었습니다."

샘물침례교회 이중직 목사는 14일(주일) 오후 창립감사예배 끝말에 참석하신 여러분의 기도를 받고 싶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제일침례교회를 왜 떠나셨는지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하셨고 왜 이교회를 세우셔야 했는지에 대해서 보다는, 여러분의 기도를 받고 싶으시다는 애절한 호소가 더 짙어 보였습니다.

저같은 평신도가 알기엔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 인간과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하나님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일이 기도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 우리 인간에게만 언어를 주셨습니다.
언어를 주셨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인간과 인간사이에 소통하는 목적도 있지만 하나님과의 소통이 가능하다는 큰 이점이 있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 수 없도록 우리 인간을 지으셨고 거기에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도록 언어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가 하나님과 우리 인간과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때 이는 한쪽만의 일방통행이 아닌 완전 쌍방통행 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가 거의 외우다시피하는 구절이 있잖습니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리라"(렘 33:3).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시 91:15).

이렇듯 하나님께서 우리기도에 응답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는 기도가 대부분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그반대의 경우도 성경에는 나타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하나님께서 부르실때에 이사야의 대답을 봅시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 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

이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고 우리가 그 요구에 응답한 것입니다.

샘물침례교회가 작년말 4가정이 가정예배로 시작해 이날 창립감사예배를 드리게 된 자세한 사정은 잘 모릅니다.

담임 목사님께선 새로 창립된 교회를 축복해주시고 부흥되게 해주시며 사역을 잘 감당하록 부탁의 말씀을 하시는 것이 일상의 창립예배에서 보고 듣는 일인데 특별히 이날 합심기도를 부탁하신 것입니다.


발행인칼럼.JPG


즉 창립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의 합심기도를 간절하게 바라셨습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 잠시 생각해 봤습니다.

심령이 가난한자,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으니 기도하려면 자기 심령의 가난한 모습을 발견해야하고 그래야지만 절박한 심정으로 애통하며 자신의 불가능을 기도로 채우려고 하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또 하나, 저는 이목사님의 개인적인 얘기나 사정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앞에 이 목사님께서는 그 영혼의 처지가 보여 기도를 애절하게 부탁하셨을 거라고 믿어봅니다.

그래서 이날 창립감사예배의 끝말도 다름아닌 참석자들의 합심기도였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의 기도도 창립감사 기도에서 한단계 높혀 성령충만으로 승리하는 교회,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교회, 주님심정 알고 충성하는 교회로 기도해야 할 듯 합니다.

당연히 기도의 태도도 애절하고 간절하며 그 시간도 길어지길 소망합니다.

<본보 발행인>

발행인컬럼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