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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쾌 장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 6:3)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는 2016년을 성경일독하기의 해로 정했습니다.


130여개가 넘는 성경일독반을 구성해 일독반의 리더와 성경일독반 담당구역 장로님들이 매달 3번째 토요일 아침마다 모여 담임목사의 강의를 듣습니다.


또 성경일독반은 최소 한달에 한차례이상 모여 성경을 읽어가면서 은혜 받은 말씀들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 혹 일독일정에 뒤쳐진 식구가 있으면 협력해서 보조를 같이 맞추도록 하기도 합니다.


엊그제 저희 성경 일독반에서는 사무엘하 6장 말씀을 가지고 여러의견들이 오고갔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궤(법궤)를 운반해 오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그 법궤운반에는 제사장 아비나답과 그 두아들 웃사와 아효가 동행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궤를 잘 운반하기 위해 새수레를 준비하고 힘이 센 소로 하여금 수레를 끌게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 소가 뛰므로 웃사가 그 궤를 붙잡았고 그런 웃사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바로 그 법궤 옆에서 죽었다고 설명합니다.


다윗왕의 명을 받들어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려던 아비나답과 두 아들은 수레도 새것으로 마련하고 그리고 소도 힘센소를 이용해 법궤를 잘 옮기려 했던 것인데 웃사가 그만 현장에서 죽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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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본 다윗왕이 얼마나 놀라고 두려워했을지는 상상이 가능합니다.


다윗왕은 법궤 옮기기를 중단하고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연구했을 겁니다.


소가 뛰어 법궤가 흔들리므로 웃사가 그 법궤에 손을 댄 것은 아주 자연스런 행동이 아니냐는 것이 우리 일독반 식구 일부의 의견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진노하심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인간들의 편리한 방법으로 법궤를 옮기려했기 때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민수기 4장을 보면 법궤를 옮길때는 만지지도 말고 보지도 말며(열지 말라) 어깨에 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웃사의 가족들은 세상적으로 말하면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법궤를 운반하려고 새수레에다 힘센소를 이용했고 또 법궤가 흔들리므로 붙잡았을 겁니다.



허나 하나님의 방법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중에는 이처럼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뜻을 잊고 나의 방법, 나의 지식, 나의 편리함, 나의 뜻으로 일을 처리해 나갈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원치 않으시는데도 우리는 그것이 곧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착각합니다.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고 봉사하고 사역하는 많은 것들 중 어떤 때는 하나님의 뜻과 방법이 아닌 우리의 방법이였음에도 이를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였을 겁니다.


최고, 최다의 결과만을 목표로 우리는 많은 일들을 해왔고 또 앞으로도 그런식으로 해나가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우리 성경일독반 식구들끼리 많은 의견을 주고 받았던 이날 모임에서 하나님께서는 최고, 최다, 최상보다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순종하고 살아가기를 분명 원하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때로는 불편하고 고통스럽고 힘들고 참기 어려울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으로 그길을 걸을때 하나님께서는 동행해 주시고 축복해 주실거라고 우리 성경일독반 식구들은 굳게 믿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나의 계획과 나의 힘과 나의 지식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힘과 그 지혜를 알게 하시고 그렇게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만이 우리의 힘이 되시기에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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