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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일 새누리교회 담임목사

 

아프카니스탄 기사와 사진이 매일 신문과 인터넷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탈출을 하다 비행기에서 떨어져 죽는 사람들의 사진, 탈출하려고 비행기에 매달려 활주로를 달려가는 모습들, 여성이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고 총에 맞아 죽은 사진, 부모는 어디갔는지 공항에 혼자 바구니에 놓여있는 어린아기의 사진까지...

비참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매일 우리의 아침을 채우고 있습니다.

 세계 최강 미국이 무려 20년을 넘게 수 많은 노력과 수조 달라의 돈을 쏟아 부었지만,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현실임을 우리는 부인 할 수없습니다. 

누구의 잘못이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분명 누구의 잘못이 누구보다 조금 더 있을 수있지만, 모든 것이 복합해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구의 잘못이던 아프카니스탄은 지금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지나가고 있음에는 분명합니다.

 오랫동안 탈레반의 통치아래에서 사람들은 두려움과 고통속에 있었습니다. 

그랬던 사람들이 미국의 점령아래 놓이게 되며,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무려 20년이 지났습니다. 

한국말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은 한국에만 적용되는 말인 것같습니다. 

10년이 두번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프카니스탄은 하나도 변한 것이, 아니 오히려 더 나빠진 것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아프카니스탄을 점령하고 가장 힘을 많이 쓴 것이 군대의 양성이었습니다. 엄청난 무기들과 훈련을 통해 강성한 군대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무려 30만명의 군대를 양성할 수있었습니다. 

아프카니스탄 군이 가진 무기들은 최신 무기로 탈레반의 그 것을 능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싸움이 일어나자, 그 30만명의 군대가 최고의 무기를 가지고도 5-6만도 안되는 탈레반에게 저항도 제대로 못하고 다 도망하거나 항복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30만명의 군대는 숫자의 군대였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월급을 받기위해 유령 군사를 만들고, 실제적으로 군사가 되더라도, 목적이 나라를 위함이 아닌 월급을 받기위함이었기에, 자신의 목숨을 버리며 나라를 지키려고 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30만명의 군대라는 그 숫자는 그저 숫자를 위한 숫자 였음이 현실에서 이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찬들도 숫자를 참 좋아합니다...

전 세계의 기독교 비율이 33%라고 통계는 말합니다. 즉 전 세계인구의 세명 중 한명이 크리스찬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을 보면 더 그 비율은 좋습니다. 

무려 55%가 크리스찬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번 미국 국회는 무려 88%가 크리스찬입니다. 한국도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닙니다. 

한국도 미국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28%가 크리스찬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미국이나 한국에서 크리스찬의 가치를 보기가 쉬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미국이나 한국에서 크리스찬의 가치를 보기가 결코 쉽지 않음을 우리는 너무도 잘압니다. 

아니 오히려 크리스찬의 가치와 반대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음을 우리는 봅니다. 

왜 일까요? 

왜 숫자로 보면 분명 뭔가 좋은 것이 나올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을까요? 

숫자로 보면 아프카니스탄의 군대는 탈레반에게 결코 질 수없는데, 왜 탈레반에게 모두 허무없게 졌을까요?

 어쩌면 그 답은 너무도 간단할지 모릅니다.

 한 사람이 군사가 될 때 그 사람은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다 내려놓고 나라와 군대의 목적이 언제나 가장 우선순위가 있게 됩니다. 

평상시에 자유를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비상시에 임무가 내려오면 지금까지 누리던 모든 개인의 자유를 내려놓고 임무를 위해 자신을 내어 놓은 사람들이 군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군사라고 이름을 가지고 살면서도 군사된 목적을 위해 나를 희생하지 않고, 아니 오히려 군사된 목적이 나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함이었다면 우리는 쉽게 그 답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것은 세상의 군사이던 예수님의 군사이던 동일할 것입니다.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2장4절..

 바울은 디모데에게 분명하게 군사된 우리의 모습이 어떠해야 한다 말씀합니다. 

군사로 부름받은 사람들이 그 목적보다 자신을 앞에 둘 때 그 군대는 오합지졸이 되고 오합지졸의 숫자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그 군대로는 결코 전쟁에 승리할 수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답은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다. 답은 나에게 있습니다. 

내가 군사로 온전히 그 직분을 알고 살아간다면 결코 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던 만약 아프카니스탄의 군사들이 군사의 직분을 제대로 알고 그렇게 싸웠다면 지금 우리가 보는 모습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아프카니스탄의 지금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아프카니스탄의 이 모습이 결코 남의 모습이 아님도.....

 아프카니스탄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 땅의 크리스찬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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