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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창삼 목사
(피스토스 기독대학 학장)

 

옛날 중국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습니다. 자기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신발을 사러 장에 가다 친구를 만났습니다.
어디를 가나 응 오래간만에 장에 가서 신발을 살까 해서 그리고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헤어져서 읍으로 향했습니다. 신발 가게 앞에 다 온 그 사람은 내 정신 좀바 혼자 머리를 탁치며 걱정을 합니다.
그는 자기 발칫수를 적어 놓은 것을 집에 두고 온 것을 깨닫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고개를 넘고 개울을 건너서 거의 집에 다 왔는데 아까 그 친구를 만났습니다.
벌써 신발을 싰는가? 아닐세. 글쎄 장에 다 가서야 발칫수를 적어놓은 쪽지를 잊어버린 것을 알고 다시 가지러 가는 길일세 아니 이 사람아 발을 내밀고 신을 신어보고 사면되지 그냥 오다니 여보게 어디 내 발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적어놓은 칫수는 틀림없지만 그 말을 들은 친구는 너털웃음을 웃으며 어이없다는 뜻이 돌아가고 그는 다시 칫수를 찾아 읍으로 갔지만 벌써 가게 문은 굳게 닫혔습니다.
자기를 믿지 못하는 세계 무엇인가 불안합니다. 천안함 사건을 두고도 서로 믿지 못하겠다고 비방합니다. 이 세상에 어느 누가 46명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갔습니까? 하나님은 없다 아니 있다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보이는 것만 경험한 것만이 있는 것이지 보이지 않는 것 그 배후에 있는 것은 생각지 않으며 없다고 말하며 생각할 가치도 없다고 합니다.
자기도 믿지 못하는데 어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세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 안에서 움직이고 있으니 이 일을 어찌해야합니까? 못 믿는다고요 제멋대로 움직인다고요 호텔방에 든 투숙객이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옆에 어지럽게 쓴 글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 사회에 좋지 못한 예를 남기고 떠난다.
나의 친구들에게는 삶을 낭비한 기억을, 나의 부모님께는 그들이 노년에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을, 나의 아내에게는 마음에 상처를, 자녀들에게는 술주정뱅이와 자살자의 이름을 남기고 떠난다. 요즘 한국에서 심심치 않게 연예인의 자살 소식을 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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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얼마 전에는 대통령을 지낸 분이 자살하였습니다. 이렇게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무책임하게 자살하여 버리니 이제는 자살하는 것이 아주 쉽게 여겨집니다.
그저 이 세상이 싫으면 그만 자살로 끝내버립니다 왜 이렇게 쉽게 목숨을 버리는가? 그것은 자기 자신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고 삶의 참된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 이 사람들에게 누가 그들에게 잃어버린 영혼을 찾고 계시는 하나님을 알려주었더라면 그는 자살을 하지 않았을 터인데 하나님이 없는 사회는 자살로 불안으로 아니 자기 자신까지 믿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은 하나님의 손안에서 섭리되고 있음을 더더욱 모르며 믿지 않기 때문에 도처에서 싸움이며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태초에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대로 창조되어진 존재입니다. 인간은 죽지 아니할 것으로 창조된 존재입니다. 즉 영생의 성질이 부여된 존재입니다. 영생할 본성이 있기 때문에 행복의 저급한 원천 속에서 만족을 누릴 수 없습니다. 많은 돈을 가졌다고 해도 거기에 만족은 없습니다.
세상 향락을 누렸다고 해도 많은 자녀를 얻고 고대광실에 살며 문전 옥탑 마련해 놓고 세상 권세를 잡았다 해도 거기에 인생의 만족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이란 그런 것으로 만족할 그런 저급한 생명이 아닙니다. 인생의 참 만족은 특별히 인간의 죄와 구원의 사실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나와 당신은 하나님께 종속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 사실을 믿지 않고 타락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고통 가운데 신음하는 인생에게 참된 쉼을 소개하는 소리가 있으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당신은 이 소리가 들립니까? 당신은 아직도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고 이 세상에는 사랑이 없다고 눈물 흘리며 자살을 생각하는가? 여기 우리를 살리신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주님의 품으로 오라 그리하여 우리 모두 믿음을 지키고 승리하여 모두 천국에서 만나 오늘의 이야기를 나무며 감사하지 않으시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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