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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세 목사>
이스트베이 복음선교회 회장대표

 

정원사가 장미의 가지를 칠 때에는 현재의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미래에 이루어질 균형 있는 멋과 모양새의 조화를 위해서 가지를 잘라냅니다.
때로는 너무 자른다 싶을 만큼 가지를 쳐 짤라냅니다. 앞으로 두고두고 정원과 조화를 이루면서 구조적으로도 성숙 미를 갖춘 풍성한 꽃들로 아름다움을 만발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신앙인의 인격의 나무도 꼭 마찬가지 일 것이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나 다”, 또는 “내 가”라고 고개를 쳐드는 교만과 감출 새 없이 솟구치는 욕망이라는 가지를 과감하게 잘라낼수 있을 때....,
뼈를 깍아 내는 아품을 감내하고라도 이기적인 나를 잘라 낼수 있을 때에만....,
우리는 그리스도인 다운 성숙한 인격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세상사람들이 어리석다고 비웃을 런지 몰라도 성령 님의 인도 하심으로 옳은 결단이 서면 과감하게 명예와 이익과 욕심을 뚝 잘라 낼수 있는, 그래서 성숙한 인격의 열매를 보여 줄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를 잘라내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잘못된 가지를 잘라내는 일은 한번으로 끝나는 과정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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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되어야하는 작업이고 동시에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사건입니다.
급진적 성화와 점진적 성화가 함께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 라고 했습니다. 그런즉 우리의 삶은 계속 성화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가지를 잘라내는 일에 아주 익숙해야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회개한다”는 말로 표현합니다. 즉 가지를 자르는 작업은 회개를 체험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회개를 체험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그는 교회에 등록은 했는지 몰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와 부활 생명으로 연결 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회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회개를 위해서“쉬지 말고 기도하라” 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처음 시작하시면서 첫 번째 멧세지를 전파하신 것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 왔느니라”(마태복음 4장17절)말씀하신 것도 이 회개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자신이 죄인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나를 거침없이 잘라내는 회개보다 더 용감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사실 비겁한 사람은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하기도 어렵지만 인정하면서도 회개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망의 문을 스스로 닫아버리는 것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심판인 불 못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동화 중에 “돌과 두 여인”이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여인들이 인생에 경험이 많은 현명한 노인에게 가르침을 얻으려고 찾아왔습니다.
한 여인은 자신이 스스로 죄인인줄 알기 때문에 괴롭고도 무거운 마음으로 왔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남편을 두 번이나 바꾼 적이 있어서 언제나 이것들이 마음 한쪽을 짓누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 여인은 스스로 자신을 죄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생활의 지혜를 얻을수 있을까하고 노인을 찾아온 것입니다.
노인이 먼저 두 여인에게 간단하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해보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여인은 눈물로 과거를 몽땅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여인은 자신은 별로 남부러울 것이 없는 평탄한 삶을 살고 있노라고 담담히 말하였습니다.
노인이 두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첫 번째 여인에게는 당신이 들 수 있는 큰돌을 두 개를 가지고 와 보라 했습니다.
두 번째 여인에게는 작은 돌들을 될수록 많이 가져와 보라 했습니다.
얼마 후에 두 여인들은 노인의 말대로 돌들을 들고 힘겹게 걸어 왔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그 돌들을 제자리에 다시 갖다 놓으라는 것이었습니다.
큰돌을 들고 온 여인, 자신이 큰 죄인이라고 고백한 여인은 그 돌들을 어디서 가져왔는지 금방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바로 제자리에 놓고 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잔돌을 잔뜩 들고온 여인은 그 돌들을 제자리에 갖다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돌들을 다 들고 다시 노인 앞으로 왔습니다.
이때에 노인이 단호히 말합니다, 죄란 것이 이런 것이고 회개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자신을 과감하게 잘라낸 사람은 과거가 죄로 얼룩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위질 없는 무성한 것은 잔돌을 많이 들고 온 여인 같아서 그 죄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인격은 언제나 누더기 옷을 입고 나타납니다.
회개한 죄인과 회개하지 않은 죄인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요, 천국과 지옥의 차이라고 하겠습니다.
빛 되신 예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나를 비추어보면 내가 잘라내야 할 가지가 어떤 가지인지 아주 분명해집니다.
우리 모두 성령 님의 인도하심으로 못된 가지를 잘라 낼 줄 아는 인격의 정원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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