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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우석 목사

<북가주 행복한 교회>


지난 달 부활 주일을 바로 앞두고 한국에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그 후로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삶과 죽음, 화와 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부활이라는 소망과 진리가 있기에 독생자 예수님을 희생시키신 하나님의 그 깊은 사랑을 다시 한번 더 확신하게 됩니다. 


가끔은 “독생자까지 그렇게 참혹하게 희생시키실 필요가 있었을까?”


 아무리 단절된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다시 이어가기 위해서라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너무 심한 고통이란 느낌이 들곤 합니다. 


자신에게 엄청난 고통과 손해가 있더라도 끝내 이루시는 하나님의 마음 속에는 손익 계산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물려받은 존재들이 바로 사람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관계에서 사랑을 빼게 되면 마치 계산기와 같은 정확하고도 냉정한 손익 계산만 남습니다. 


반면에 사랑이 존재하는 관계에는 손익 계산보다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희생적이고도 거룩한 ‘낭비’가 있게 됩니다. 


‘거룩함’과 ‘낭비’는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 개념이지만 ‘사랑’이 두 개념을 엮어주는 것이지요. 

사랑에는 자기를 위해 흐르는 것 보다 타인을 위해 흘러가는 손해적인 요소가 분명 있습니다. 

부모라면 자녀들에게 필수적인 것만 주려 하지 않고 가능한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주려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것을 낭비라 여기지 않고 계산마저 하지 않습니다. 


베다니 마을에 살던 마리아는 본인에게 엄청난 가치가 있던 향유를 예수님을 위해 아낌없이 부었습니다. 


예수님도 막지 않으셨고 오히려 ‘기억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 눈에는 그것이 낭비였습니다. 


현실적으로 그 향유를 팔아 구제하는 비용으로 쓴다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라는 계산을 했습니다 (막14:3-9). 


그 자리에 ‘거룩한 낭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던 사람은 예수님과 마리아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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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가족의 구성원들끼리는 서로 손익 계산을 하지 않습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희생하기를 마지않고 오히려 더 해주지 못해 안타까워합니다. 

5월 한 달만이라도 우리의 교회들이 이런 모습이기를 바랍니다. 


교회 구성원들끼리 아낌없이 희생하고 서로 배려해 주었으면 합니다. 


또한 교회 밖으로도 시선을 돌려 돌봄과 섬김이 필요한 곳에 ‘거룩한 낭비’가 넘쳐나기를 상상해 봅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희생시켜서라도 우리에게 최상, 최고를 주려 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낭비’를 묵상하려 하니 왠지 콧등이 시큰해지고 마음 한 켠이 따뜻해져 옵니다.     

    

<happypastorsuh@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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