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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을 이끈 지도자요 20세기 최고 대중 연설가인 한 흑인 목사가 35세의 나이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수상 결정이 보도되자 그의 인권운동을 가장 경멸하고 증오했던 에드거 후버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그 목사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먼저 그에게 몇 개의 녹음테이프와 함께 당장 인권운동을 중단하고 노벨평화상 수상을 거절하도록 공갈·협박하는 편지를 보냈다.

사실 그 목사는 언제 저격당할지 모르는 경각 속에 살았기 때문에 항상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런 그는 일종의 긴장 해소책으로 몇몇 여인들과 함께 밤을 보냈다고 한다. 

이걸 후버 국장이 아주 치밀하게 감시하고 녹음한 것이다. 

특별히 후버는 극보수적 백인으로 흑인 인권운동을 몹시 불쾌해하고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 목사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그러자 목사는 깊은 고뇌에 빠졌다. 

급기야 후버는 미국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녹음테이프를 보냈다. 

다음날 신문 지면에 그 목사의 부도덕성이 보도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신문에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기사가 보도된다면 그 언론이 인권운동을 방해한다는 오해를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바로 기자들은 그 목사의 인권운동과 노벨평화상 수상을 세계 최강 국가인 미국의 브랜드요 국익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미국이 낳은 링컨과 같은 영웅적 인물을 테이프 하나 가지고 흠집을 내서야 되겠는가. 테이프 역시 얼마든지 조작될 수도 있는 것을. 

이런 영웅과 지도자는 그냥 역사에 맡기자.” 

그러자 후버는 목사의 측근들에게 테이프를 보내서 자중지란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나 측근들도 그 테이프를 쓰레기통에 넣어 버렸다. 

결국 후버는 그의 사모에게 테이프를 보냈지만 그녀도 눈물을 삼키며 불에 태워 버렸다. 
오히려 남편인 목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 걱정 말고 흑인 인권운동을 계속하세요. 그리고 떳떳하게 노벨평화상을 받고 오세요.” 
이 사실은 먼 훗날 그 목사의 둘도 없는 친구인 랄프 에베나티가 쓴 ‘그리고 벽은 무너졌네’라는 책과 시사잡지 뉴스위크(1998년 1월)에서 밝혀진 내용이다. 

선진대국의 기자들과 사회의식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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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틴루터 킹 목사(왼쪽)와 에드거 후버 국장.

우리는 지난주 스승주일을 맞이했다. 

스승은 시대의 지도자가 아닌가. 

그런데 우리 사회는 스승과 지도자의 권위를 의도적으로 추락시키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어느 역사, 어느 공동체이건 스승과 지도자를 끌어내리는 사회는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지도자를 중히 여기지 않아서 영원히 망하게 됐다. 

그러나 남왕국은 망한 후에라도 랍비들을 존중히 여겨서 다시 고토로 돌아오지 않았는가. 

학생들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그 인권을 강조함으로써 교사의 권위를 끌어내리면 안 된다. 
당연히 교사는 권위가 있어야 하고 존중을 받아야 한다. 

세상에 학생이 교사를 구타하다니,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가. 
더구나 영적 지도자는 더 그렇다. 

그러기에 영적 지도자를 존중히 여겨야 한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확인 되지 않는 뜬소문이나 루머를 가지고 지도자를 흠집 내며 공격하고 심지어는 없는 것도 만들어 낸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지도자를 끌어내리려는 풍토가 농후하다. 평생 섬기던 영적 지도자까지도 끌어내린다. 

세계적인 지도자도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격하고 끌어내리려고 한다. 

물론 무조건 지도자의 허물이나 부도덕성을 덮어주자는 말은 아니다. 

지도자를 존중히 여기는 안목을 갖자는 말이다. 
확인되지 않는 뜬소문으로 정죄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교회공동체와 교계를 위해서 덕스럽게 처리해야 한다. 

다시 지도자를 존중히 여기는 풍토를 만들고 그 위에 사랑과 존중의 꽃씨를 뿌리자.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고 건덕의 꽃씨가 뿌려질 때 한국교회는 더 견고하고 곤고히 서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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