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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제 삶에 개입해주셔서 무속인의 아들이 아닌, 찬양으로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살게 해주신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29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 부근의 카페에서 만난 찬양사역자 이준석(34·고척교회)씨의 인터뷰 요지는 하나님 은혜와 사랑이었다. 

그는 2012년 1집 ‘이젠 나’를 발표한 데 이어 최근 2집 ‘그것이 내게 복이라’ 앨범을 냈다. 

무속인의 대를 끊고 찬양으로 복음 전하는 길을 허락해주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앨범에 담았다. 

그는 지금까지의 모든 여정이 주님의 놀라운 섭리 안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고백했다.

중학교 3학년이던 해에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킨 사건이 일어났다.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경험한 어머니가 무속인이 되기로 결정한 것. 

신내림을 받고 굿을 해야만 했던 어머니는 그렇게 가족 곁을 떠났다. 

어머니 없는 고교 시절은 외로움과 절망, 먹먹함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음악이 있었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중창단에서 활동하게 됐는데, 12명 중 9명이 크리스천이었다. 

그러다보니 부르는 곡 대부분이 성가였고, 자연스럽게 찬양을 접했다. 

가끔 교회에서 특송도 불렀다. 

믿음의 씨앗은 이렇게 뿌려졌다.

20대 초반에 음악을 하겠다고 결심한 후 개인레슨을 받았다. 

“선생님께서 외국 CCM 가수의 CD를 선물로 주셨어요. 
그런데 이 가수가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지, 들으면서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왜 가스펠을 할까’ 의문을 가졌지요. 
매일 그 음악을 들으면서 어느새 CCM에 푹 빠졌습니다.”

하지만 그가 음악에 대한 열정을 키우면 키울수록 상황은 힘들어졌다. 

특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마음을 뒀을 땐 모진 핍박을 견뎌야 했다. 

“제가 믿음의 길을 갈수록 집안과의 갈등은 더욱 심해졌어요. 무용을 하던 여동생은 갑자기 무릎 십자 인대가 파열돼 꿈을 접었고, 아버지 회사는 휘청거렸어요. 

설상가상으로 집에 화재까지 났답니다. 

어머니는 이 모든 게 제가 예수 믿어서 생긴 일이라고 핍박했어요. 
심지어 찬양을 부르는 것 역시 크리스천들로부터 사기 당하는 일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니까요.”
그때마다 가족을 향한 간절한 기도가 절로 나왔다.

“나중에 천국 가서 우리 가족들을 못 만날까봐 늘 두려웠어요. 믿음 있는 자매와 결혼한다고 하니 아무도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을 정도로 완강했지요. 
하지만 가족들의 구원을 놓고 절박하게 기도하기에 한 영혼에 대한 소중함을 그만큼 느끼는 것 같습니다.”

2005년 CBS 제16회 창작복음성가제 금상을 받으며 CCM가수로 활동을 시작했다. 
아워드림선교회(대표 전용대 목사) 소속인 그는 하나님이 부르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계속되는 찬양사역 일정으로 목이 쉴 때도 많지만 이를 통해 한 영혼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다.

특히 그는 일본선교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2007년 일본 단기선교를 다녀온 후 일본선교에 대한 소명은 더 확실해졌다. 

“개인적인 영적침체로 힘들 때 일본에서 단기선교를 하며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경험했습니다.”
 이후 그는 일본계 미국인 가스펠 그룹인 ‘NCM2’ 콰이어 단원으로 일본 복음화에 힘쓰고 있다. 
또 일본선교를 위한 한국인 프로젝트팀 ‘SYS’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1년에 석달 정도를 일본의 병원, 학교 등을 다니며 찬양 간증집회를 열고 있다. 

한·일 관계의 냉각기가 계속되면서 일본 내 대도시의 ‘코리아타운’이 무너지는 등 한·일선교 환경이 더욱 척박해졌지만 이씨는 오히려 이때가 한·일선교가 도약할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한국인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극명하게 나타낼 수 있는 곳이 일본인 것 같아요. 
두 나라 사이에 마음 아픈 역사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 하는 곳이 일본입니다. 찬양으로 한국이든 일본이든 어디서나 잃어버린 영혼을 살리는 일에 쓰임 받고 싶습니다.” 
<국민일보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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