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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영화계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한국영화인 '브로커' 속 한 장면.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를 매개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로 배우 송강호는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남자배우상을, 고레에다 감독은 에큐메니컬상을 받았다.

 

법 밖에 놓인 낙태... 관심 밖으로 버려지나

 

영화 '브로커'에서 수진(배두나)은 아이를 버리는 엄마의 심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렇게 책임지지도 않을 거면서 도대체 아이는 왜 낳는 것인가." 이 말은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한 교회에 마련된 베이비박스에 갓난아기를 버린 소영(이지은)에게 한 말이었다. 

이런 수진에게 소영이 물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 죽이는 것이 낳고 나서 버리는 것보다 죄가 가벼워?"

최근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화제를 모은 '브로커'는 보편적 생명 가치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해 인간 존재를 깊이 성찰하게 만드는 영화로 호평을 받았다. 

특히 앞서 언급된 소영과 수진의 대화는 관객들에게 '낙태'라는 복잡미묘한 사회적 화두를 곧장 던지고 있다.

낙태는 오랜 기간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범죄로 받아들여졌다. 

엄연히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낙태죄'도 존재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낙태는 더 이상 죄가 되지 않게 됐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다. 

'헌법불합치'는 당장 법을 폐지해야 하는 '위헌'은 아니다. 

헌법에는 맞지 않지만 당장 폐지하지 말고, 대신 정해진 기한에 이를 대체할 만한 법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전제를 가진다. 

그러나 대체입법 움직임마저도 흐지부지된 상태에서 낙태죄는 지난해 1월 1일부로 자동 폐지됐다.

이로써 낙태 시술은 우리 사회에서 보편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브로커 속 소영과 수진의 대화에서도 일부 드러났듯, 아이를 버리는 '유기'는 불편한 것일지 몰라도 '낙태'는 더 이상 불편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낙태죄 폐지 옹호론자들은 시대가 변했고 여성의 자기 결정권 및 건강권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낙태는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기독교계는 낙태가 특정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과는 무관하게 근본적인 인간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라고 주장한다.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사무총장 이길찬 목사는 15일 "낙태는 곧 살인"이라고 했다. 

그는 "인간의 생명과 인간됨은 수정되는 순간부터 시작되고 낙태는 자신을 스스로 방어할 수 없는 존재를 살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나쁜 살인 행위"라고 강조했다. 

이어 "태중의 아기는 엄마와는 구별되는 별도의 인격체이며 엄연한 사람"이라며 "엄마조차도 태아의 생명권을 박탈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현실은 녹록지 않지만 낙태가 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상황을 막는 방안이 적극 제시되고 있다. 

베이비박스의 설립자이자 주사랑공동체 이종락 목사는 "어떤 방식으로 생겨난 생명이든 정부가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장치가 기본적으로 필요하고, 엄마가 키우려고 하면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선지원 후행정' 절차가 신속히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국회에 발의된 낙태법은 태아의 성장주기가 몇 주인지에 따라 잉태된 생명체를 차별하는데, 앞으로는 수정된 지 얼마 안 된 생명체도 생명으로 인식하고 보호하는 법이 발의,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사랑공동체는 현재 보호출산제(익명출산제), 부성애법(DNA 검사를 통해 아이 아빠를 추적해 양육의 책임을 다하도록 하는 제도) 등의 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 같은 법 대처를 통해 낙태를 방지하고 산모와 아이를 실질적으로 보호한다는 방침이다.

낙태와 관련해 교계의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헌법불합치 결정 직후엔 교계가 들불처럼 일어나 반발했지만 지금은 잠잠해진 상황이다. 

이 목사는 "(교계가)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낙태를 적극 반대하고 태아의 생명을 지키는 캠페인과 세미나, 서명운동 등을 범시민 운동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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