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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뻔히 알고 부르던 '터키'란 나라의 국호가 '튀르키예'로 바뀌었다. 

지난달 6월 4일 UN으로부터 공식 허가를 받았다고 하니 이제 그 나라의 이름은 튀르키예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불편하다.

 터키란 이름은 발음하기도 쉽다. 

튀르키예는 발음에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터키가 좋다.

튀르키예란 '터키인의 땅'이란 의미라는데 추수감사절의 상징인 터키는 영어식 이름이고 더구나 '겁쟁이' '멍청이'이란 의미를 담고 있어 싫다는 것이다. 

자기 나라 이름을 바꾸겠다는데 크게 탓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국민적 동의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 그 나라 대통령의 재집권 시도에서 비롯되었다면 좀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현재 대통령은 에제프 에르도안이다. 

2003년부터 세 차례 총리를 지냈고 2014년부터는 대통령이 되었다. 

내년 6월 개최되는 대선에 또 출마하여 30년 집권의 꿈을 이루겠다는 보수정치가다. 

러시아의 우크라 침략에 분노한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가입을 찬성하지 않겠다고 어깃장을 놨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달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정상회의에서 찬성 쪽으로 선회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전투기 수입 등 챙길 거 다 챙기며 외교적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터키는 지금 비명을 지르고있는 중이다. 70%의 인플레 때문이다. 

밥상물가가 60~100% 뛰었고 부동산가스료전기료의 폭등 때문에 연일 시위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한마디로 환율 불안에다 살인적인 물가 때문에 멀쩡한 직장인들도 하루아침에 거리에서 구걸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에르도안의 포퓰리즘에 그 나라의 화폐인 리라화는 반토막이 났고 터키 경제는 폭탄을 맞고 있다는 경제학자들의 분석이다. 

정치가 경제를 망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30년 집권을 위해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경제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래서 지지기반인 보수층의 결집을 위해 나라 이름도 튀르키예로 바꿔서 '애교'를 떠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다.

더 한 일도 했다. 

그 유명한 소피아 성당을 박물관에서 이슬람 모스크로 바꿔버리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비잔틴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게 망하면서 소피아 성당은 이슬람 군사들의 말발굽에 짓밟혔고 그때부터 그 아름다운 성당은 모스크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슬픈 역사였다. 

그러나 터키공화국의 국부이자 초대대통령인 무스타파 아타튀르크가 1935년 소피아를 박물관으로 변경시켰다. 

대단한 결단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기독교든 이슬람이든 일체의 종교행위를 금지시켰다. 

박물관으로 변경되면서 성당 벽에 그려있던 그 유명한 모자이크 성화에 뿌려졌던 횟가루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성지순례자들은 박물관을 방문하는 식으로 소피아 성당을 둘러 봤지만 지난해 7월 에르도안 대통령이 돌연 이를 이슬람 사원으로 다시 되돌린다고 선포한 것이다. 

소피아 성당 바로 맞은 편엔 '블루 모스크'란 오스만 제국의 자존심이란 거대한 이슬람 사원이 떡 버티고 서 있다. 

그런데도 소피아까지 모스크로 바꾼 것이다. 이슬람주의를 앞세워 국내 인기를 모으기 위한 에르도안의 아이디어였다.

왜 우리는 터키에 관심이 많은가? 

소피아와 같은 수많은 기독교 문화유산들, 거룩하고 숭고하게 보존되어야 할 사도 바울과 사도 요한을 비롯한 수많은 믿음의 용사들의 순교와 충절의 발자국이 서려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 기독교 역사의 발자취가 이슬람 땅에 볼모로 잡혀 있는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터키란 나라다.

소피아 성당이 세계 기독교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에르도안에 의해 제멋대로 모스크로 바뀌는 것과 흡사하게 터키의 기독교 유적들은 그냥 버려지거나 방치되어있는 수준이다. 

사실은 버리고 싶어도 관광객과 순례자들이 놓고 가는 관광수입을 위해 적당히 현상 유지 수준이라고나 할까?

하나 예를 들어보자. 

성지순례단을 이끌고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7대 교회' 등의 유적지를 지나다 보면 '데린구유'란 곳을 가게 된다. 

거대한 지하동굴이다. 

갑바도기아 고원지대엔 도시라 불릴만한 200여 개 정도의 지하동굴들이 있는데 데린구유가 대표적이다. 

동로마 제국 시대 무슬림들의 습격을 피해 그리스도인들이 살았던 곳으로 무려 2만 명이 살 수 있는 규모다. 

곡물창고가 있고 식당, 학교, 예배당이 있으니 과연 그 지하도시의 크기가 짐작이 간다.

그런데 이 역사적인 동굴 입구 주변에는 변변한 공중화장실 하나가 없다. 

기독교 박해를 피해 대를 이어 숨어 살던 눈물나는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의 현장이 이렇게 허무하게 버림 받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안내 표지판도 없다. 

도둑 여행하듯 버스에서 내려 급하게 동굴에 들어갔다가 금방 그 시골 타운을 빠져나와야 한다.

그러나 어쩌랴! 

성지순례 중이라 할지라도 찬송가마저 크게 부르지 못하는 서러움은 바로 그 나라가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이다. 인구의 98%가 이슬람이다.

 터키에 가면 어느 마을에 머물건 동네 모스크의 미나렛에서 울려 퍼지는 이맘(Imam)의 흐느끼는 기도 소리를 새벽마다 의무적으로(?) 들어주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눈물과 사랑으로 사도 바울이 개척하고 섬겼던 소아시아의 교회들은 지금 터키의 그늘진 역사속에 숨어 있다. 

터키란 이름을 튀르키예로 바꿔서 불러 달라는 말에 동의한다고 하자. 

다만 정치, 경제위기를 타개하며 장기집권을 누릴 목적으로 이슬람주의의 칭찬을 얻겠다고 그 나라에 널려있는 기독교 유산들을 때려 부수려는 폭력적인 광신주의가 광풍처럼 등장하지 않기를 기대할 뿐이다.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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