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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누구라도 노래방에 가서 마이크를 잡으면 부끄럽던 집사님이나 권사님들도 한곡조 씩 멋들어지게 흘러나오는 노래 실력들이 있다. ‘히든 싱어’들이다. 다만 숨기거나 그냥 외면하고 살아온 것 뿐이다.


찬송가 말고 ‘세상노래’를 부르면 죄를 짓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 어머니도 그랬다. 그런 어머니 밑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내가 신학교에 가서는 충무로의 ‘티롤’이나 ‘필하모니’ 음악감상실을 내 집처럼 드나들던 시절이 있었다. 특별히 클래식을 애호해서 라기보다는 그 컴컴한 음악감상실에서 나 혼자만의 세계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버릇 때문인지 나는 지금도 운전하고 다닐 때 대부분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쇼팽이나 모짤트의 음악은 금방 알아 듣는다.


옛날엔 부자집이나 유성기 판을 틀어놓고 살았지 나같은 가난뱅이 집안의 아이들은 ‘금성’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CBS 음악방송이 고작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 유성기 음반시대가 사라지고 컴팩트 디스크란 뜻의 CD시대가 다가오니 음악을 접하는게 훨씬 편리했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의 도래로 그 CD시대도 역사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CD로 찬송가나 복음성가를 듣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그럼 우리 같은 시니어, 좀 기분 나쁜 말로 ‘노인네’들은 도대체 무엇으로 세상노래건 클래식이건 혹은 찬송가던 듣고 살란 말인가?


젊은 사람들은 셀폰에다 듣고 싶은 뮤직리스트를 빼곡하게 채워서 시도때도 없이 듣고 다니지만 그것도 다운받을 때마다 돈 내라고 손을 내미는 바람에 노인네들에게는 마땅치가 않다. ‘판도라’란 공짜 앱이 있긴 하지만 내가 원하는게 아니고 지네들 맘대로 틀어주는거라 신청곡(?)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컴퓨터나 TV앞에 앉아 있을 때는 유튜브란 걸 이용해서 음악을 접하는 게 지금 나의 열악한 음악환경이다. 한번은 차에서 듣던 ‘Two Sunsets’이란 피아노곡에 훅 빠져서 집에 와서 유튜브 검색창에 입력해보니 금방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태리 피아니스트 루도비코 이나우디의 연주였다.



그럭저럭 이렇게 유튜브에 재미를 붙이다가 나는 놀라운 ‘노래천사’를 발견했다. 바로 캐롤리나 프로첸코(Karolina Protsenko)란 13세 소녀다. 이 소녀를 통해 나는 또 버스킹(Busking)이 무엇인지도 확실하게 깨달았다. 버스킹이란 ‘길거리에서 공연하다’는 의미의 버스크(Busk)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거지들의 구걸 행위에서 시작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름 없는 젊은 음악가들의 열린 공연행위로 이해하면 된다.


버스킹을 통해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른 프로첸코는 지금 한창 러시아가 쳐들어가겠다고 서방세계에 겁을 주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고향이다. 거기서 어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온 프로첸코의 어머니는 피아니스트, 아버지는 기타리스트, 그러니까 음악가족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대형화물트럭으로 물건을 실어나르는 대륙횡단 운전사다. 우리네와 비슷한 이민가족이다.


그런데 바이올린에 천재적 재능을 보이던 이 소녀가 버스킹을 시작하자 길을 가던 행인들의 반응이 대단했다. 그래서 그녀의 버스킹 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린 것이 대박이 난 것이다.


프로첸코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춤도 함께 추고 때로는 노래도 한다. 발랄하고 경쾌한 그녀의 길거리 공짜 연주회를 감상하기 위해 사람들이 서서히 모여들기 시작했고 감동이 밀려오면 공연장 가운데 살며시 놓아둔 바구니에 돈을 넣고 가기도 했다. 관람료는 아니지만 사람들은 기분에 따라 팁을 놓고 간다. LA에 살고있는 그녀의 버스킹 장소는 대개 산타모니카 3가 스트릿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은 공연장 인기보다는 유튜브 인기가 폭발적이다. 어느 버스킹 모습은 뷰어(Viewer), 즉 그 유튜브 영상을 관람한 사람의 숫자가 1,300만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636만명의 구독자를 갖고 있으니 입이 딱 벌어진다. ‘오징어게임’으로 신바람이 났던 넷플릭스처럼 이 소녀 때문에 신바람이 난 유튜브 채널은 아마도 표정관리를 하고 있을 법하다.


구독자와 매일 시청률을 종합한 결과로 유튜브 채널에서 매달 이 소녀에게 지불하는 돈이 최고 120만 달러라고 하니 버스킹으로 일약 백만장자 스타덤에 오른 것이다. 돈을 떠나서 월드스타로 떠오른 프로첸코의 연주회를 구경하노라면 사실 저절로 힐링이 되는 기분을 느낀다.


그의 공연을 본 사람들은 “이 작은 소녀와 바이올린이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사한다. 하나님이 이 소녀와 늘 함께하기를 빈다” “우리 모두 다른 언어를 갖고 있지만 음악은 모두가 공유하는 공통언어임을 깨닫게 해 준다” “그녀는 기쁨을 전파하는 작은 천사”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컴컴한 음악감상실이나 정중하다 못해 숨막힐 것 같은 클래식한 음악당 연주에 꽁꽁 묶여 있던 음악을 길바닥으로 끌고 나온 버스킹, 지나가던 행인들이 그 버스킹으로 순간 순간 힐링을 경험할 수 있다면야 흔히 하는 말로 “와이 낫(Why Not)?” 우리들의 찬송가나 복음성가도 길거리로 끌고 나오는 ‘가스펠 버스킹?’ 그건 어떨까? 행인들에게 행복과 기쁨을 선물할 수 있다면 그것도 불가능한 도전은 아니겠지만 과연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들어주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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