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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초등학교 교문 앞 골목에 예쁘장한 카페가 있다. '아홉길사랑'(舍廊) 이라는 카페다. 

'서울시 아름다운 간판'으로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이 카페에서는 아메리카노를 제공하지 않는다. 

딱 한 종류 믹스커피만 제공한다. 

할머니들이 드시는 그 봉지커피가 떠오른다면 딱 맞다. 

이 믹스커피를 싫어하면 먹지 않아도 타박하지 않으니 마음껏 이용해도 되는 곳이다.

왜 맛있는 메뉴를 준비하지 않을까? 

이웃의 카페가 피해를 입을까 염려해서이다.

이곳의 오후는 자녀를 데리고 가려는 학부모들로 북적북적하다. 

카페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내 아이가 교문을 언제 나오나 지켜 본다. 

커피값은 받지 않는다. 

서비스도 없는 자율배식 카페이다. 

사실상 무료인데 이용자들이 이웃돕기에 써달라고 돈을 저금통에 넣고 가기도 한다.

이 카페는 맞은편 아홉길사랑교회가 운영한다. 

어느 해인가 서울 남서부에서 초등학생의 성폭력 사건이 터진 후 학부모들이 교문 앞에서 자녀 하교를 기다리자 교회가 그들을 위해 카페를 열었다. 

아홉길사랑교회는 1960년대 중반 가난한 동네에서 가난하게 출발한 교회였다. 

구로공단 근로자들이 많이 살았지만 지금은 중국동포들이 이웃 동네를 중심으로 타운을 이루고 산다. 

이 교회에도 여럿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60년을 지켜 온 이 교회는 이제 2000여 명이 출석하는 지역의 중심 커뮤니티가 되었다.

카페 옆에는 이발소, 분식점, 피아노 교습소가 입주한 3층짜리 건물이 있다. 

5부 예배까지 드려야 하는 상황에서 마침 이 건물이 매물로 나왔다. 

교회는 매입을 서둘렀다.

한데 담임목사는 "우리가 좁게 예배드리자"며 매입을 중단했다. 

이유는 매입과 동시에 이발소, 분식점, 피아노 교습소 등이 생계를 잃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건물주도, 믿지 않던 세입자들도 교회에 출석한다.

어느 해에는 교회 식당에서 사용할 쌀을 싸게 파는 먼 곳의 성도가 운영하는 가게가 있었지만 이 또한 의논 끝에 거래처를 바꿨다. 

"조금 비싸도 동네 쌀가게를 이용하는 게 맞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쌀가게 주인이 감동 받아 교회를 다니게 됐다.

이 교회는 요란한 전도행사를 하지 않는다. 

주차난 해소를 위해 교회 주차장을 개방하는 등 지역 커뮤니티 역할을 다할 뿐이다. 

주차장 개방하면 민폐 이용객들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교회는 10년째 감당하고 있다. 

'실생활에 심어주는 신앙 훈련'인 것이다. 

몇 년 전 담임목사는 색다른 제안을 했다. 

'택시주일'이다. 

교회 올 때 자가용 놓고 택시 타고 오면 택시 기사에게 1만원을 주고 거스름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그 주일은 헌금 시간이 없다. 

사회에 헌금했기 때문이다. 

지역 택시 기사를 돕고 환경을 생각하자는 취지에서 시행했을 뿐이다. 

또 어느 날은 시각장애인 한 사람을 위해 시각장애인용 보도블록을 교회 전체에 설치했다. 

출산장려금 지원과 군대 제대자 격려금과 지역 공부방 운영도 같은 맥락이다.

아, 여러 팩트 확인 중 잔잔한 감동이 또 하나 더 있다. 

교회가 제공하는 사택을 담임 목사가 거절한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담임이 사택을 받으면 다른 교역자들이 그만큼 기회가 상실되기 때문이다." 

대신 젊은 전도사 세 분이 사택 생활을 한다. 

그들은 마음껏 복음을 전하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어느 주일. 

아홉길사랑교회 교인들은 전남 고흥의 미자립농어촌교회 목사가 이끄는 대 예배를 드렸다. 

그 시각 김 목사는 그 시골교회에서 10여 명의 연로한 교인에게 말씀을 전했다. 

도농간 강단 교류 차원이었다. 

시골교회 목사는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역시 후원이 이뤄졌다.

김 목사는 공수부대 출신으로 애국정신이 투철하다. 

지뢰 사고로 11명의 동료가 폭사하고 혼자 목숨을 건진적도 있다.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때 북쪽 GP에 투입되기도 했다.

우리 사회는 한국교회의 극보수화를 우려하지만, 보수는 예수의 복음을 복음답게 실천할 때 진짜 보수가 된다. 

아홉길사랑교회의 모토는 "예수님이면 충분합니다"이다.

<국민일보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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