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교회의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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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학봉 목사


사람은 단독적으로는 살 수 없는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개인을 위시하여 부족이나 국가의 경우도 문화적인 교류의 양식이나 전쟁 등으로 차원이 다른 사회의 양상으로 역사를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기독교문화의 유입은 현대저인 의미에서의 종교로서의 양식이 다를지라고, 여러가지 모양으로 전해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가 아시아교회에서 종교문화교류를 연구해야 하는 목적은, 단순한 학문적인 연구나 역사적인 진실을 추구하는데만 있는것이 아니라, 고대시대부터 있었던 종교문화, 특히 유대교의 유일신 신앙과 기독교의 구원의 복음이 아시아교회를 통하여, 기독교뿐 아니라 다른 종교들이나 일반 민속문화와 생활문화에도 뿌리내려있는 실상을 추구하여 우리 아시아교회와 아시아 사람들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비록 하나님을 알지못하였던 시대부터 “온 세상의 하나님”(사54:5)께서는 “창세전에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택하사”(엡1:4) 오늘이 있게 하셨고, 인류역사의 종말에 영혼추수의 대역사의 사역자들로 쓰시기 위하여 준비된 일꾼들임을 확인하고져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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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하는 필자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동방에 보낸 사실들과 솔로몬왕시대의 인도를 중계무역으로 극동지방까지의 세계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사실과 앗수리아와 바벨론 포로이후에 아시아지역에 분산되어 정착하였던 역사적인 사실과, 아렉산더대왕의 오리엔트정복때에 유대인들을 동원하여 현지에 정주하게 한 일들과 AD70년의 로마군에 의한 예루살렘점령후에 유대인들의 추방으로 아시아의 여러지역들과 인도에 까지 망명한 사람들의 역사적인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는 일상생활에서의 제일 소중한 것이 자기들의 믿는 신앙이기 때문에, 사람은 개인이나 집단으로 어디에 가서든지 그들의 신앙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서도 아시아교회의 활발한 선교로서 예수님의 동생인 유다라 불리우는(막6:3) 사도 도마가 아시아교회의 대표로서 인도와 중국의 끝까지 선교하였고, 기독교신앙의 아라비아무역업자들의 극동지역까지의 진출은 기독교신앙과 문화를 현지에 전파하였고, 마침내 당제국의 태종황제의 기독교에로의 개종으로 당제국의 황실종교로 크게 부흥하여 제국과 주변국가들에 상당한 영향을 마쳤던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과정을 겪은 사실들이, 로마제국의 보호를 받았던 서방교회는 신앙의 이론파 신학을 발전시켜서 신앙의 학문화로 훌륭한 열매를 맺었지만, 그 부작용도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단으로 정죄받아서 살기위하여 도피하면서도 성경적인 신앙에 근거하면서, 또 자신의 직업에 충성하면서 믿음을 지켜왔던 아시아교회 사람들은 생활화된 신안을 지켜왔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시아교회의 역사적인 사실들을 확실하게 하는 증거들이 많이 있지만, 특히 781년에 중국 장안에 세워졌던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의 발견은 너무나 확실한 증거로 되어 있습니다.
서방교회에서 로마제국의 권력에 의하여 AD431년에 이단으로 정죄하였던 잘못은, 서방교회의 대표에 의하여 1994년에 사죄하고 화해하기로 아시아교회 대표와 화해하였음으로 그때까지 아시아교회가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억울한 희생을 당했지만, 이제는 아시아교회를 아직도 이단으로 정죄받은것만 알고있는 분들은 역사에서 뒤떨어진 사람들이 되고맙니다.
이날까지 역사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기독교신앙의 흐름의 영향을 받은 아시아교회는 하나님의 인류역사의 마지막 수확의 일군으로 쓰시기 위하여 준비된 사람임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좀더 사실적으로 알기 원하시는 분들은 필자가 출판한 “사도 도마의 이야기”(이사아초대 교회사)와 “아시아기독교, 경교의 이야기”(이사아 중세교회사)와 앗수리아교회와 갈대아교회의 감독이신 “말 바와이 솔로”(Mar Bawai Soro)박사가 쓰신 “아시아교회, 그 사도성과 정통성”(The Church of the East, Apostolic & Othodox-필자역)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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