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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교회 손경일 담임목사

 

한 아내는 자다가 깨 보니 남편이 옆에 없는 걸 알고 깜짝 놀라 남편을 찾아 거실로 나가보았습니다. 

거실에 가보니 거기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자다말고 거실에 있는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왜 안 자요? 내일 출근해야하는데?' 

남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까 들은 목사님 설교 때문에 잠이 안 와." 

생각하지도 못한 대답에 아내는 너무 감사했습니다. 

남편은 교회 설교에 무관심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감격하며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그래요 여보, 설교 듣고 마음에 감동받은 것은 감사하지만 그래도 자야지요?"

남편은 대답했습니다. 

"글쎄말이야. 자야 하는데 설교 시간 내내 너무 깊게 잠들었거든. 그래서 잠이 안 오네."

잠을 잘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잠이 없다면 참 힘들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잠을 자는 순간에는 다 잊을 수 있고, 피곤한 몸이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잠이 우리에게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언제나 깨어남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약을 먹으면서까지 숙면을 하려는 현대인이 늘어나는 요즘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다릅니다. 사람에게 죽음은 '끝'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사람이 자고 있어요'와 ' 사람이 죽었어요'는 완전히 다릅니다. 

성경에도 많은 죽음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스데반을 향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행 9장59-60절

자니라!

스데반의 죽음에 대하여 성경은 '죽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내일을 위해 안식을 취하는, 깨어남을 전제로 하는 잠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일반적인 생각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해 완전히 다른 해석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스데잠의 끝이 세상의 끝과 다름을 분명히 합니다...

스데반의 끝이 세상이 두려워하는 죽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성경은 스데반을 잔다고 했을까요?

기독교 역사에서 최초의 순교자로 불리는 스데반. 

스데반은 분쟁으로 교회가 어지러웠던 때에 교회 리더로서 등장합니다. 

그가 전에는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성경은 그 것에 대해 전혀 이야기 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그의 삶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그렇게 좋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까지 방탕한 삶을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 사람으로 태어나 헬라 문화권에서 살아왔기에 세상의 문화를 더 좋아 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스데반을 모르는 이는 기독교인 중에 없습니다..

그를 이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습니다..

스데반의 끝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끝이 좋다는 말은 바로 그는 주님 눈에 죽은자가 아니라 자고 있는자이기 때문입니다..

즉 다시 주님과 함께 생명의 부활로 깨어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교부 중 한 명인 성 어거스틴은 젊은 시절에 세상을 엄청나게 즐기던 망나니였습니다. 

그로 인해 피해를 입고 상처 받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그의 젊은 날때문에 그를 욕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마지막을 모두 잘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변화되어 성 어거스틴이라고 불리게된 그의 마지막을...

인생은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을 좋게 마무리하는 것은 더더욱 중요합니다. 

Finish Strong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끝까지 잘 마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국말로 '용두사미'라는 말 또한 같은 맥락입니다. 

용의 머리로 시작해서 뱀의 꼬리가 된다는 말입니다. 시작과 달리 끝이 좋지 않음을 말합니다. 

시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 마치는 것입니다.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전 7장8a절

우리 인생은 지금의 모습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스데반처럼, 성 어거스틴처럼 인생의 마지막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인생이 "죽었다"가 아니라 "자니라"로 마무리되기를 소망합니다. 

한 해의 끝이 보이는 크리스마스의 계절이 왔습니다. 

이 계절을 지나가며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카드와 선물을 정성껏 나눌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누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끝을 좋게하실 수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혹 가족 중에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면, 지금이 바로 이 크리스마스의 계절이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끝이 좋은 삶"으로 우리가 사랑하는 모두가 나아가는 그런 기쁨의 계절이 되기를 소망하고 또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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