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목사의 소극적이고 열정 없는 목회는 확실한 사명감 없이, 또는 준비 없이 목회에 뛰어 들었거나 아니면 과거에 열심히 뛰었으나 탈진 상태에 있고 또는 부흥이 되지 않아 마음과 몸이 지쳐있어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한데 교회사정이 안식년이나 영적 재충전의 기회를 갖기에는 교회를 맏길만한 부교역자나 재정이 마땅치 않은 형편이다. 

사모가 남편의 목회스타일에 불만하는 또 다른 케이스는 사모가 만든 목사의 틀에 자기 남편이 맞춰지지 않아 속이 타는 경우이다. 

큰교회, 유명목사, 부흥강사 등 사모 나름대로 모델을 세워놓고 나의 남편도 그와 같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상형의 목사가 어떤 것인지 목사 자신도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사람마다 환경도 그릇도 다르니 자기의 능력에 넘치도록 너무 많은 것을 요구받는 목사에게는 주눅과 좌절과 포기만 생길뿐이다. 

주님께서는 목회자를 처음부터 크게 만드시지 않고 조금씩 키워나가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막4:27 말씀은(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지만 천국의 일군인 목회자, 또는 성도의 분량을 비유해도 틀리지 않다. 

그런데 우리 사모들은 목회시작 한지 얼마 안 돼서부터 완벽하고 휼륭한 설교가요 목회자이기를 바란다. 

자고 깨는 중에 자라되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한다는 말씀 같이 하나님께서 남편을 키우고 계신 것을 알지 못하고 사모가 억지로 잡아 늘려서 키우려고 한다. 

내 생각에 더디 자란다고 생각해도 이 교회에 부르신 사역자의 우선순위는 목사요 사모가 아닌 것을 늘 기억하고 인내하며 자라나는데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남편의 그릇이 커지는데 필요한 영양소는 지적, 비난, 지시, 강요가 아니라 이해, 용납, 칭찬, 사랑, 인내, 기도이다. 

사모가 목사보다 목회에 더 열심인 경우 어느 정도는 목회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이고 전체적인 교회 부흥에는 큰 도움보다는 부작용이 따르기 쉽고 남편은 의존적이 되거나 앞장선 사모를 따라가다가 포기하기 쉬우며 사역의 생각 차이가 부부갈등으로 번져 가정이 파괴되며 결국에는 사모 역시 탈진하게 된다. 

남편의 성취욕을 북돋우기보다 사는 재미, 목회하는 재미를 북돋아 주는 편이 장기적 안목을 갖는 현명한 내조이다. 

2. 남편이 기도를 충분히 하지 않아 걱정되는 사모 

남편이 기도를 충분히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경우는 기도를 충분히 안 한다고 생각이 되는 쪽에서, 즉 먼저 깨닫는 쪽에서 "네가 더 기도하라"고 깨우쳐 주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을 대신 읽어주거나 묵상을 대신 해 줄수는 없어도 돕는 배필로서 남편 몫의 모자란다고 생각되는 만큼의 기도는 할 수 있다. 

그러나 남편을 위한 기도를 하면서도 순수한 사랑과 협조의 기도보다는 남편을 이렇게 저렇게 고쳐주시고 변화시켜 주십사고 이기적인 기도를 드린다. 

이기적인 기도, 사람 보란듯이 하는 기도, 생색내는 기도 또는 한풀이 기도가 아닌 진정 남편을 위해 썩는 밀알과 같은 은밀한 기도는 분명 응답 받는다.

(다음호에 계속)

-배명희 저서 신세대사모학(2004)에서-

<북가주 사모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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